빠삐용(Papillon, 1973년작) - 내 기억 속 최초의 동성애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 주연의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년)을 처음 본 때는 아마 내가 10살도 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올빼미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깊은 밤, 조무래기였던 나는 잠도 잊은 채 TV에서 방영하는 이 영화에 푹 빠져 눈을 떼지 못했다. 14인치 흑백 TV 속에는 어린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장면이 나왔다. 죄수 중에 젊고 야리야리하게 생긴 남자가 있었다. 감방은 무척 덥고 습해 보였다. 젊은 죄수는 웃통을 벗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간수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간수는 험상궂은 인상에 덩치가 컸다. 간수는 잠을 자고 있는 젊은 죄수를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누워있는 죄수의 벗은 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간수의 거칠고 두툼한 손은 땀으로 번들거리는 젊은 죄수의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간수의 손은 가슴과 배를 쓰다듬다가 마침내 바지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찌릿한 요의(尿意)를 느꼈다.
그다음 간수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돌연 죄수의 입에 꽃 한 송이를 꽂은 것이다. 아마 장미꽃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죄수의 얼굴을 큰 손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간수 쪽으로 돌렸다.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는지 그제야 잠이 깼는지 젊은 죄수는 마침내 눈을 뜨고 간수와 눈이 마주쳤다. 죄수의 눈빛은 오묘했다.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 어린 나는 그 눈빛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저 사람 왜 저러는 거야?”
나는 참지 못하고 같이 영화를 보던 엄마한테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미친 사람이라서 그래.”
엄마의 간결한 대답. 어린 나의 질문이 껄끄러웠으리라. 미친 사람? 나는 엄마의 대답이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 질문은 간수의 이상한 행동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젊은 죄수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간수는 젊은 죄수를 괴롭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입 안에 꽃을 꽂았는가다. 머리카락이나 귀 뒤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간수의 행동은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없는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 장면이 내가 영화에서 처음 본, 아니 영화뿐만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남은 최초의 동성애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