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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레베카(Rebecca) – 고전미 물씬 풍기는 로맨틱 스릴러

나무전차 2020. 10. 24. 17:57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Working Title)이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레베카(Rebecca), 1940년>를 리메이크해서 넷플릭스에 공개했다. 워킹 타이틀 작품치고는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워킹 타이틀은 로맨틱 코미디 외에도 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한 이력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레베카>는 기본적으로 스릴러물이지만 로맨스 요소도 충분히 들어있으니 아주 동떨어진 선택은 아닌 듯하다.

 

영화 <레베카>는 영국의 소설가 대프니 듀모리에(Daphne du Maurier)가 쓴 동명의 소설 <레베카, 1938>가 원작이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히치콕 감독의 유일한 아카데미 수상 이력이다. 히치콕 감독은 나중에 대프니 듀모리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새(The Birds), 1963년>도 영화화한다. 그녀의 작품이 감독의 취향에 맞았던 모양이다.

 

 

대프니 듀모리에(Daphne du Maurier)

 

 

 

 

 

[고딕 소설]

 

대프니 듀모리에의 소설 <레베카>는 보통 고딕 소설(Gothic novel) 장르로 구분한다. 고딕 소설은 폐허로 남은 중세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묘사한 유럽의 낭만주의 소설을 말한다.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1839>이 대표적인 고딕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포 소설의 대가 러브크래프트(Lovecraft)도 고딕 호러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중세의 건축물 이외에도 미지의 생물이 만든 거대하고 기괴한 건축물로 소재를 확대하기도 했다.

 

소설 <레베카>도 오래된 저택인 맨덜리(Manderley)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므로 고딕 소설에 요건에 딱 맞는다고 볼 수 있다.

 

공포감이 강조된 초기의 고딕 소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로맨스가 추가되어 20세기 후반에는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한 소설을 일컫는 말로 변했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 1847년>와 대프니 듀모리에의 소설 <레베카>는 그 중간 과정쯤에 있는 듯하다. 비교적 최근 작품인 스테프니 메이어(Stephenie Meyer)의 판타지 소설 <트와일라잇(Twilight), 2005년> 시리즈를 고딕 소설 장르에 포함하기도 한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년>과 <블라이 저택의 유령(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년>도 오래된 저택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소재로 한 전형적인 고딕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스포일러] 다음 내용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줄거리]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부잣집 마나님의 말동무로 고용되어 시중을 들던 여주인공은 몬테카를로에서 영국의 귀족 맥심 드 윈터(Maxim de Winter)를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다. 그는 1년 전 아내 레베카를 사고로 잃고 상심에 빠져 있는 남자다. 청춘남녀가 만나면 늘 그렇듯이 둘 사이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고 영국에 있는 그의 저택 맨덜리(Manderley)에 함께 들어온다.

 

 

 

 

 

맨덜리는 잉글랜드에서 제일가는 저택이라는 소문답게 크고 화려하다. 가난하게 살아온 여주인공은 저택의 웅장한 기운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택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집사 덴버스 부인은(Mrs. Danvers)은 어쩐지 적대적이다.

 

덴버스 부인은 이전 안주인이었던 레베카와 여주인공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레베카는 모든 면이 뛰어나다. 다들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뛰어난 미적 감각과 추진력, 사람을 끄는 매력이 탁월하다고 얘기한다. 집안 곳곳에 레베카의 흔적이 남아있다. 레베카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여주인공보다 더 강력한 존재다.

 

게다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남편마저 여주인공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주인공은 맨덜리 저택에서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출연배우]

 

릴리 제임스(Lily James, 1989년생) – 드 윈터 부인(Mrs. de Winter) 역

 

 

 

 

영화에서는 특이하게도 여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없다. 원작 소설 자체에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여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나’라고만 되어 있다. 왜 주인공의 이름을 아예 설정하지 않았을까? 반면 작품 속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물 레베카는 작품의 제목이기까지 하다.

 

주인공은 레베카의 기세에 눌려 자기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릴리 제임스는 디즈니의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신데렐라(Cinderella), 2015년>에서 신데렐라 역을 맡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영화 <레베카>에서는 점점 신경증으로 치닫는 소심하고 자신감 부족한 드 윈터 부인 캐릭터를 잘 표현하여 보는 이들에게 고구마를 잔뜩 선사한다.

 

 

 

 

아미 해머(Armie Hammer, 1986년생) – 맥심 드 윈터(Maxim de Winter) 역

 

 

 

 

맥심(Maxim)은 잘생기고, 키 크고, 게다가 잉글랜드 제일의 대저택을 소유한 귀족이다. 부인 레베카와 사별하고 상심에 빠져 있었지만 여주인공과 만나서 다시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사별한 부인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아직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은 것일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년>의 매력 넘치는 대학원생 올리버(Oliver) 역으로 전 세계 게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아미 해머(Armie Hammer)가 이번에는 부유한 잉글랜드 귀족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보듬어 주고 싶은 상처한 남자 역할이다. 196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과 탁월한 미모는 여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남자 역할에 제격이다.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Kristin Scott Thomas, 1960년생) – 댄버스 부인(Mrs. Danvers) 역

 

 

 

 

댄버스 부인은 딱 보기에도 깐깐함이 철철 흘러넘치는 인상이다. 저택의 집사이지만 그녀가 내뿜는 포스는 안주인 같다. 그녀는 새로 온 안주인을 도통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사고로 죽은 전 안주인 레베카와는 상상 이상의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레베카>에서도 특유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포일러] 다음 내용부터는 강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작가(대프니 듀모리에)는 자신을 '나(드 윈터 부인)'와 '레베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로 분리 투사한 게 아닐까?]

 

일단 영화 <레베카>에서는 무기력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바로 여주인공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없는 캐릭터다. 그녀는 결혼하여 남편의 집에 들어왔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맥심이라는 귀족의 아내일 뿐이다.

 

반면 맥심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그녀는 집안의 모든 걸 주관하고 관리하고 조정한다. 주체적이고 강한 성격이다. 부유한 귀족 남편도 그녀의 손아귀에 쥐고 흔든다.

 

게다가 성적 욕망에도 충실하다. 레베카는 유부녀지만 애인도 따로 있고 한 남자가 아닌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듯하다. 그리고 남자뿐 아니라 여자와도 성적인 만남을 가지는 것 같다. 상대는 집사인 댄버스 부인으로 추측된다.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사랑하고 숭배한다. 둘 사이가 동성애 관계라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댄버스 부인은 그 시대의 윤리적 기준으로는 용납되기 어려운 레베카의 강한 성적 욕망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자유롭게 자신의 뜻대로 주체적으로 사는 레베카는 숭배의 대상이다.

 

이는 아마도 원작자인 대프니 듀모리에의 자기 투영이 아닐까 싶다. 대프니 듀모리에는 사후에 양성애자 논란이 있기도 했다. 작가는 소설 <레베카>에 자신의 현실을 표현하는 캐릭터인 이름 없는 ‘나’와 자기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캐릭터인 ‘레베카’를 대비시킨 게 아닐까?

 

그리고 이상적인 캐릭터 ‘레베카’는 여성의 권리와 욕망, 그리고 성소수자가 용납되지 않는 그 당시의 현실 세계에서는 살 수 없기에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레베카>라는 작품을 통해 풍자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