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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영화&책] 조커(Joker) &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 진보와 빈곤 & 21세기 기본소득 - 빈부격차와 소통의 부재

by 나무전차 2020. 10. 7.

 

 

영화 조커를 봤다. DC코믹스의 대표적 슈퍼 히어로인 배트맨의 숙적 조커를 타이틀 롤로 만든 상업 영화가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예상보다 더 강렬하고 묵직했다. 영화 조커는 코미디언을 꿈꾸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희대의 악당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 갈등구조는 ‘빈부격차’와 ‘소통의 부재’다.

 

영화를 보고 나니 최근에 봤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올랐다. 이 영화 역시 빈부격차와 소통의 부재를 다룬 영화이고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요즘 세계 영화제의 화두는 빈부격차인 모양이다. 2019년 칸의 황금종려상도 빈부격차의 문제를 다룬 기생충이 가져갔으니 말이다.

 

이 두 영화와 함께 빈부격차와 복지제도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색다른 관점으로 주장한 두 권의 책을 같이 소개하려 한다. 토지 사유제를 비판한 경제학의 고전 ‘진보와 빈곤’, 그리고 복지정책을 시민 기본소득제 하나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21세기 기본소득’이다.

 

 

 

[스포일러] 영화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 조커(Joker, 2019)

 

감독 : 토드 필립스 Todd Phillips  (병맛 코미디 ‘행오버’를 연출한 감독이라고?)

 

주연 :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

 

 

 

<시대 배경>

 

배트맨 세계관이므로 영화의 배경은 가상의 도시 고담시다. 영화의 시대가 정확히 몇 년도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자동차, 가전제품, 의상 디자인 등을 보면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으로 유추할 수 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감독은 영화의 시대 배경을 1981년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1981년일까? 1981년은 미국에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해다. 1979년에 집권한 영국의 대처 총리와 함께 기업 친화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레이건 대통령은 극심한 빈부격차를 가져오게 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아마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색감>

 

영화의 질감은 전반적으로 빛바랜 듯 흐릿하고, 뿌옇고, 입자가 거칠고, 어둡고, 채도가 낮다. 80년대 초반이 시대 배경이므로 이러한 빛바랜 레트로풍 색감이 잘 어울린다. 전반적인 색감은 칙칙하고 우울한 녹색이다. 나는 이 우울한 저채도의 녹색에 녹색의 보색인 붉은 핏빛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정작 피가 흐르는 장면은 별로 없지만, 화면 속에는 불행한 주인공 아서의 붉은 피가 계속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내내 처절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빈부의 격차 & 소통의 부재>

 

고담시는 혼란하다. 도시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도시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고 쥐 떼가 창궐한다. 특히 빈부의 격차가 가장 큰 문젯거리다. 가난한 시민들은 부자들을 증오한다.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아서 역시 가난한 데다가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다. 다행히 복지제도가 있어서 정신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아서는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억제 불가능한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린다. 그의 웃음은 괴이하고 처절하다. 아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발작에 대비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쪽지를 들고 다니며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그를 이상하게 보고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쪽지를 보여준다. 이래저래 아서는 주변 사람들한테 환영받지 못한다.

 

 

버스 안에서 발작을 일으킨 아서

 

정신질환의 영향인지 아서는 사람들과 교감하는 게 서툴다. 친구도 없고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도 별로 원만하지 못하다. 아무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상담사마저도 아서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다. 복지 예산 부족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상담사는 아서와 마지막 상담에서 아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조곤조곤 독설을 날린다.

 

 

코미디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은 꿈이 있는 아서

 

아서는 꿈이 있다. 아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 그는 아이디어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코미디를 연습하지만 교감능력이 부족한 아서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를 영 맞출 수가 없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영화 내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아서를 계속 괴롭히고, 좌절하게 하고, 결국 조커로 폭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Send In The Clowns>

 

아서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도중에 근처에 혼자 앉아 있던 여자가 남자 세 명에게 희롱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별나게 웃는 아서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그 틈에 여자는 옆 칸으로 피한다. 그리고 남자 한 명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아서를 향해 천천히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이때 남자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Send In The Clowns’이다.

 

 

이 곡은 김연아의 소치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 곡으로 사용되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이 쇼트 프로그램을 김연아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애잔한 선율과 조화를 이룬 김연아의 연기는 정말 아름답다. 이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버전으로 다운받아서 가끔 듣고 있었는데 여기서 이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이 곡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으로 다시 흘러나온다.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도 무척 근사하다.

 

youtu.be/YCfrS-lpn-A

 

이 지하철 장면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아서는 여기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조커로서 자각하게 되는 발화점이 된다.

 

 

 

 

<자유와 행복을 얻은 아서 – 조커의 탄생>

 

아서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세우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정신과 약도 먹지 않게 된 아서의 광기는 극에 달한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제 행복해 보인다. 아서의 엄마는 아서를 ‘해피’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조커로 폭주한 아서의 모습은 이제 그 이름에 걸맞아 보인다. 그의 춤사위는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고 자유롭다. 전에는 발작적인 웃음을 참느라 고통스러워했지만 조커가 된 아서의 웃음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그는 자신을 억눌렀던 사회의 편견, 멸시, 고통에서 벗어나 조커라는 진정한 자아를 찾음으로써 마침내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2.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

 

감독 : 켄 로치 Ken Loach

 

주연 : 데이브 존스 Dave Johns

 

 

 

 

<소통의 부재>

 

영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화면 상태에서 남녀의 대화 소리로 시작한다. 여자는 질문하고 남자는 대답한다. 여자의 목소리는 감정이라고는 느낄 수 없이 차갑고 건조하다. 마치 로봇에서 나오는 합성 음성 같다. 질병수당 수급 대상자인지를 파악하는 문진이다. 하지만 남자는 답답하다. 남자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질문 내용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뿐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아무리 항변해도 여자는 들을 생각이 없다. 결국 남자는 질병수당을 받지 못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조커와 마찬가지로 빈부의 격차와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복지정책이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는 영국이지만 소통의 부재는 심각하다. 복지담당 공무원들은 원칙과 규정만을 내세우고 수급자들의 사정을 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

 

 

상담원과 전화 통화를 시도하지만 통 연결되지 않는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내와 사별해서 혼자 사는 나이 많은 목수다. 그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고 질병수당을 받으려고 하지만 첫 상담부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담당기관에 전화 상담을 하려고 해도 상담원 부족으로 몇 시간 동안 통화대기를 감수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빠르다지만 평생 목수로 살아온 그에게 컴퓨터는 거대한 벽 같다. 그는 영화 내내 질병수당 수급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빈부의 격차>

 

선진국 영국에도 빈부격차는 심각하다. 다니엘은 관공서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하러 온 케이티를 우연히 알게 되고 케이티와 두 아이를 도와주게 되는데, 런던의 살인적인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뉴캐슬로 이주한 미혼모 케이티는 다니엘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 케이티의 집에는 전기도 나오지 않고 아이들에게 먹일 것도 부족하다.

 

 

 

울음을 터트리는 케이티

 

다니엘은 케이티와 아이들을 데리고 빈민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지원해주는 민간단체에 방문한다. 이것저것 음식을 챙기던 케이티는 너무도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캔을 따고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마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울음을 터트린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다니엘은 평생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동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의 급격한 변화는 따라잡기 힘들다. 옆집에 사는 젊은이는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 중국인과 소통하며 새로운 돈벌이를 찾지만 다니엘은 그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결국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질병수당 대신에 일단 실업수당을 받으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서투르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일을 할 수 없는데도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건 다니엘에게 모순이고 거짓이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이 상황이 너무 견딜 수 없다.

 

 

 

 

간혹 돈 앞에 자존심을 세우는 것에 회의적인 사람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데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 가치관을 존중한다. 하지만, 존중은 하지만 탐탁지 않다. 나는 이 대사를 당당하게 말하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좋다. 그를 열렬히 응원한다. 그를 좋아하고 열렬히 응원했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3.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

 

저자 : 헨리 조지(Henry George)

 

장르 : 사회학

 

 

 

1879년에 출판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경제사회학의 고전이다. 59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고 중반까지 생소한 경제학 이론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학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책이다. 

 

하지만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단순하다. 인류가 물질적 진보를 이룰수록 빈곤이 더욱 증가하는 이유는 생산의 이득이 모두 토지의 가치 상승으로 집중되는 토지사유제 때문이며 역사적, 윤리적으로 불합리한 토지사유제를 철폐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모든 세금을 ‘토지가치세’로 단일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의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는 자유시장경쟁, 자유무역, 사유재산을 강하게 옹호하고 정부 역할의 축소를 강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같은 노선이다. 또한 생산 의욕을 떨어뜨리는 부가가치세, 소비세, 소득세, 상속세 등을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세금을 ‘토지가치세’로 단순화하면 오히려 세수도 늘고 생산의욕은 더욱 향상되며 극빈자가 사라지고 인류는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 말한다.

 

거의 150여년 전에 쓴 책이지만 지금의 현실에도 잘 맞아 보인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토지사유제가 과연 정당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한국에서도 헨리 조지의 주장보다는 매우 약한 ‘토지공개념’이 박정희 정권 때부터 거론되어 왔지만 지금 이런 개념을 얘기하면 사회주의자나 빨갱이가 아니냐는 비판을 하며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유층은 헨리 조지의 주장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아포리즘에 경도되어 있는 - 언젠가는 나도 땅 주인이나 건물주가 될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많은 서민들도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본다면 헨리 조지의 사상이 매우 합리적이고 우아하다고 느낄 것이며, 이러한 사상이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지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젠가는 토지사유제가 철폐되고 빈민이 사라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4. 21세기 기본소득(Basic Income, 2017)

 

저자 :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장르 : 사회학

 

 

 

이 책은 ‘진보와 빈곤’보다 더 양이 많다. 644쪽이나 되는 데다가 작은 폰트로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인쇄되어 있다. 마음을 단단히 잡고 읽어야 한다. 수리에 약한 사람에게는 약간 버거울 수 있다. 각종 세금에 대한 비율과 수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많은데 이해가 쉽지 않다. 물론 내가 수리에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다양한 선택적 복지제도를 ‘기본소득제’라는 보편적 복지제도로 단일화하자는 주장이다. 세금 제도를 단일화자는 ‘진보와 빈곤’보다 하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책의 공통점은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면 사회에서 빈민이 사라지고 인간은 존엄성을 지키고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선택적 복지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부자, 가난한 자, 실업자, 직장인, 자영업자 모두에게 지급한다. 예전에 무상급식(무상이 아닌 의무급식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논란에서 꼭 등장했던 이건희 손자에게도 지급한다. 그리고 그 외의 복지제도는 모두 없앤다.

 

저자는 기본소득제도의 필요성을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설명하고 반대의견 및 문제점도 다양하게 모아 놓았다. 이 책 역시 ‘진보와 빈곤’처럼 얼핏 보기에 사회주의자의 과도한 이상적 주장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물론 ‘진보와 빈곤’보다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들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연구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찬찬히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산업은 집중화, 자동화되었다. 게다가 인공지능의 발달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와 알고리즘이 대신하도록 만들고 있다. 서민들은 실업 문제를 해소하라고 아우성치지만 어차피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추세인 듯하다. 근미래의 인간은 노동 시장에서 해방 또는 소외될 것이다. 노동은 의무가 아닌 특권이 되고 노동 시장에서 비껴간 인간은 소비의 주체만으로 자리 잡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 시대에서 기본소득제도는 필요불가결한 제도가 될 것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조커’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제로섬 게임이고 내가 악착같이 달려들어 빼앗지 못하면 빼앗기고 마는 정글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미 대선 후보 중에도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한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세상이 점차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헨리 조지나 필리프 판 파레이스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주장을 차분하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을 굳이 빨간 색안경을 끼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로 몰아세우지 말고 말이다.

 

우리에게 ‘소통의 부재’가 빈부격차나 빈곤보다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첨부의 글> 이 글은 작년 2019년 10월에 썼던 글이다. 2020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강타한 시점에 먼 나라 이야기 같았던 기본소득제도가 갑자기 화두로 떠올랐고, 심지어 '기본소득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에서도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세상은 예상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것 같다.


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주요부문 4관왕을 차지한 사실도 놀랍다. 이 글을 쓴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