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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넷플릭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 인간 말종들로 가득한 비정한 세상

by 나무전차 2020. 10. 17.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부터 베트남 전쟁 초기까지 미국 북동부 오하이오(Ohio)와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의 낙후된 중소 도시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둡고 무겁다. 색감은 채도를 낮춘 칙칙한 갈색 계열이고 입자도 거칠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서늘하게 파고드는 한기가 느껴진다. 문학으로 따진다면 하드보일드(hard-boild)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다음 내용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다. 작가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Pollock, 1954년생)이 2011년에 발표한 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평생을 제지 공장 노동자와 트럭 운전수로 살면서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져 있던 도널드 레이 폴록은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작가로 데뷔한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영화는 걸쭉한 목소리를 지닌 중년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담담하게 책을 읽어주는 듯한 남자의 내레이션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듯한 남자의 목소리는 영화의 분위기에 매우 잘 어울린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영화가 끝날 때쯤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엔딩 크레딧을 보니 내레이션을 맡은 사람은 원작 소설의 작가 도널드 레이 폴록이었다. 영화의 원작자가 직접 내레이션을 하다니 뜻밖이었다. 하지만 오하이오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 나온 작품이었을 테니 작가가 직접 내레이션을 맡은 건 탁월한 연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내용보다 더 순화해서 표현했다고 한다. 작가의 하드보일드 문체를 직접 접해보기 위해서라도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세상엔 인간 말종들이 널렸어.”]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대체로 종교에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십자가의 이미지는 기괴하고 잔인한 고통의 이미지다. 신은 도무지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신의 가르침을 전달해야 할 목사는 교만하고 타락했으며 나사가 빠진 듯 제정신이 아니다. 신앙이 독실하고 착한 사람은 오히려 고통받는다.

 

하지만 종교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에는 나쁜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방인을 적대시하는 이웃, 선하고 약해 보이는 친구를 괴롭히는 청소년, 권력을 탐하는 부패한 보안관, 심지어는 변태적인 연쇄 살인마까지. 종교의 문제라기보다는 종교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세상엔 인간 말종들이 널렸어. (There’s a lot of no good son of bitches out there.)”

 

주인공 아빈(Arvin)의 아버지가 말한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루거 Luger]

 

 

 

 

루거(Luger)는 독일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자동권총으로서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된 권총이다. 디자인이 독특하여 눈에 잘 띄는 모델이다.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작품에서 독일군은 반드시 이 권총을 사용한다. 루거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도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루거를 보게 되면 무척 반갑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권총이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꼬맹이였을 때,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나와 동생을 위해 장난감 권총 두 자루를 사 오셨다. 하나는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베레타(Beretta)였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루거(Luger)였다.

 

둘 다 플라스틱이 아닌 진짜 쇠로 만든 제품이었고 베레타는 탄창 분리도 가능하고 총알도 발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조무래기가 가지고 놀기에는 연령대가 맞지 않는 장난감이었다. 어머니는 사고를 우려해서 총알을 아예 버리고 나에게 주셨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고급스러웠던 베레타는 언젠가부터 사라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형이 훔쳐 간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돌려받지는 못했다. 베레타는 내게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루거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주로 악의 무리인 나치 군인들이 사용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권총이지만 내게는 정겹고 친근하다.

 

 

 

 

 

[출연 배우] 캐스팅이 상당히 화려하다.

 

 

톰 홀랜드(Tom Holland, 1996년생) – 아빈 러셀 역

주인공 아빈(Arvin)의 인생은 어릴 때부터 영 순조롭지 않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매사에 부정적인 편이다. 오래전 아버지가 아빈에게 말해 준 “세상엔 인간 말종들이 널렸어.”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의붓여동생을 무척 아낀다.

 

<스파이더맨(Spider-Man)> 시리즈로 유명한 톰 홀랜드가 출연했다.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이니만큼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Peter Parker)와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르다. 우울한 반항아적 기질이 가득한 청소년 역할을 잘 소화한다.

 

 

 

 

빌 스카스가드(Bill Skarsgård, 1990년생) – 윌러드 러셀 역

윌러드 러셀(Willard Russell)은 아빈의 아버지다. 2차 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서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그에게 너무 가혹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부터 자신만의 제단을 만들고 아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한다.

 

빌 스카스가드는 스웨덴 출신의 배우다. 이름 철자에 독특한 표기가 있다. 스웨덴어 표기인 듯하다. 출연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지만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로버트 패틴슨(Robert Pattinson, 1986년생) – 프레스턴 티가딘 목사 역

아빈의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다. 하지만 첫날부터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비싼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거들먹거리는 경향이 있다.

 

<트와일라잇(Twilight), 2008년>의 희멀건 뱀파이어 로버트 패틴슨은 이제는 하이틴 스타의 이미지에서 거의 벗어난 듯하다.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트와일라잇의 꼬리표를 평생 떼어낼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일단 발성 자체가 아주 독특하다. 로버트 패틴슨의 목소리가 이렇게 가늘고 비열하게 들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멀끔하게 잘생겼지만 비호감에 밉상인 캐릭터를 매우 잘 표현한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특별출연 개념으로 올라온다. 출연 시간은 짧지만 존재감이 매우 크다.

 

 

 

 

 

라일리 키오(Riley Keough, 1989년생) – 샌디 핸더슨 역

샌디(Sandy)는 보안관 리(Lee)의 여동생이고 칼(Carl)의 부인이다. 예쁜 얼굴에 숨겨진 악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남편인 칼과는 서로 첫눈에 반한다. 부창부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낯이 익은 배우는 아니다. 검색해보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 2015년>에서 임모탄 조(Immortan Joe)의 다섯 아내 중 케이퍼블(Capable) 역을 맡았다. 특이한 점은 외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다.

 

 

 

 

제이슨 클라크(Jason Clarke, 1969년생) – 칼 핸더슨 역

이 영화에서 악한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첫 순위로 칼(Carl)을 고른다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자신의 욕망에 아주 충실한 인물이다.

 

여기서 이 배우를 처음 본 순간, 분명 어디서 본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제이슨 클라크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Terminator Genisys), 2015년>에서 존 코너(John Connor) 역으로 출연했다. 바로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 출연했을 때보다 살이 많이 찐 탓이다.

 

 

 

 

 

세바스찬 스탠(Sebastian Stan, 1982년생) – 리 보데커 역

보안관 리(Lee)는 샌디의 오빠다. 권력을 탐하는 부패한 보안관이다.

 

세바스찬 스탠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2014년>의 버키 반즈(Bucky Barnes)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그때보다 살을 많이 찌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