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인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독특한 분위기의 슈퍼히어로물이다. 각자 색다른 초능력을 가진 7명의 남매가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시즌 2까지 나와 있다. 타임슬립 능력을 가진 이도 있어서 현재인 2019년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시즌 2에서는 배경이 아예 1960년대다.
특히 미술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살짝 바랜 듯한 색감이나 클래식한 소품이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풍이다. 특이한 점은 2019년임에도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세계관을 멀티 유니버스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즌 1은 초반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각자가 지닌 초능력이 그다지 신통치 않다. 기존 슈퍼히어로물의 화려한 액션신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초중반의 지루함을 견뎌내면 막판에 폭발하듯 펼쳐지는 웅장한 스케일의 화끈한 장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레트로풍의 미술뿐 아니라 특히 삽입된 음악이 좋은데 아무래도 추억을 소환하는 80년대 음악이 귀에 많이 들어온다. 그중 인상적인 두 곡을 소개한다.
1. 티파니(Tiffany) - I Think We're Alone Now, 1987
시즌 1의 1화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 집에 모두 모인 하그리브스 남매들. 그중 넘버 1인 루서가 오래된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리면서 이 곡이 흘러나온다. 경쾌한 비트가 쿵쿵 울리기 시작하고 다들 각자의 방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 노래는 80년대 후반 하이틴 스타로 큰 인기를 얻은 티파니의 빌보드 1위 곡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곡보다는 비틀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aw Him Standing There’를 더 좋아했다. 곡에 관련한 사연도 있다. 내 방에서 이 노래를 혼자 우렁차게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시더니 “왜 널 낳았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화를 내시는 거다. 무슨 영문인가 어리둥절하다가 잠시 생각해보니 가사에 ‘When I Saw’라는 부분을 엄마는 ‘왜 낳았어’로 잘못 들었던 거였다. 화내실 만도 했다.
어쨌거나 예전에는 ‘I Think We're Alone Now’라는 곡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수십 년이 흘러 엄브렐러 아카데미 삽입곡으로 다시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명곡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티파니의 근황이 궁금해서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2019년에 이 곡을 다시 부른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10대 소녀에서 후덕한 중년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목소리는 더욱 파워풀해진 듯하다. 71년 동갑내기라 그런지 후덕한 아줌마가 되었어도 친근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질감이랄까.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을 하면서 행복하길 바란다.
2. 피터 실링(Peter Schilling) - Major Tom(Coming Home), 1983
https://youtu.be/wO0 A0 XcWy88
시즌 2의 5화에서도 인상적인 곡이 하나 등장한다. 침팬지 포고가 아직 인간의 지능을 갖기 전 유인 우주선 발사 실험에 이용되는데, 우주선 발사와 추락 장면에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곡이지만 귀에 익은 후렴구를 듣는 순간 ‘그래,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지.’ 하며 바로 옛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장르는 80년대 유행하던 일렉트로 댄스 팝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그때는 가사를 전혀 모르고 들었기 때문에 그저 흔한 댄스 뮤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사는 우주 비행사 톰 소령이 우주 비행 도중에 사고를 당하고 표류하면서 집에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안타깝고 슬픈 내용이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는 가사 내용과 화면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세련되게 잘 편집된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역시 이 노래도 명곡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