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 등장인물의 성지향성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밝혀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아 넣었으니 양해바랍니다.)
<마인드헌터>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본격 범죄 스릴러물이다. 넷플릭스 추천작이기도 하고 평도 좋은 편이라 오래전부터 찜해 놓았다가 보기 시작했는데 간만에 밤잠을 설치며 단숨에 시즌 2까지 정주행했다.
범죄 심리학과 프로파일링에 기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주행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레터링 디자인과 살짝 바랜 듯한 색감도 매력적이다. 음산한 기운을 더해주는 음악 선곡도 근사하다. 시즌 3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어서 시즌 3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출연 배우]
조나단 그로프(Jonathan Groff, 1985년생) – 홀든 포드 역
천재성이 있으나 분위기는 잘 못 맞추고 쉬는 날에도 넥타이를 고집하는 고지식한 FBI 요원 홀든 포드(Holden Ford)를 연기한다. 감정 기복이 없고 이성적이면서도 직관력과 임기응변이 뛰어난 매력적인 캐릭터다. FBI 행동과학부의 중심이다.
조나단 그로프는 위키피디아를 보니 커밍아웃한 게이로 나온다. 어쩐지 눈매가 야들야들한 게 심상치 않았다.
홀트 맥컬러니(Holt McCallany, 1964년생) – 빌 텐치 역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범죄심리학 강의를 하다가 포드 요원과 의기투합하여 FBI 행동과학부를 이끌어나가는 FBI 요원 빌 텐치(Bill Tench) 역을 맡았다. 마초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배우다. 출연작을 검색해보니 주로 액션영화에서 경찰이나 특수요원 역할을 많이 맡은 듯하다.
극 중에서 나이가 44세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나이보다 10살 이상 적은 나이를 연기하기는 좀 무리인 듯한 느낌도 있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넉살 좋고 처세에 능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잘 표현한다.
실제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극 중에서는 엄청난 골초라 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지독하게 많이 피워댄다. 공공장소에서 금연이 보편화된 요즘 기준에서 보면 비행기 안에서도 식당에서도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는 70년대의 모습이 이채롭다. 하긴 한국에서도 80년대까지는 버스 안이나 지하철 승차장에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흔했다.
안나 토브(Anna Torv, 1978년생) – 웬디 카 박사 역
반가운 얼굴이다. 예전에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 SF 드라마 <프린지(Fringe)>에서 FBI 요원 올리비아 던햄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 <마인드헌터>에서는 냉철하고 도도한 이미지의 심리학 박사를 연기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성지향성을 숨기고 살아간다. (역시나 PC에 충실한 넷플릭스) 웬디 카(Wendy Carr) 박사의 실제 모델도 레즈비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쉬운 점은 시즌 2에서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지 업무적으로 존재감이 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시즌 3에서는 원래대로 회복하기를 바란다.
캐머런 브리턴(Cameron Britton, 1986년생) – 에드 캠퍼 역
마인드헌터에서 가장 반가운 배우. 나는 이 배우를 <엄브렐러 아카데미(The Umbrella Academy)>의 로맨틱 악당 헤이즐(Hazel) 역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조연이지만 무척 인상적인 존재감을 뿜어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가 마인드헌터의 악명높은 연쇄살인자 에드 캠퍼(Ed Kemper) 역으로 출연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즌 1-2화에서 처음 등장한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마인드헌터를 보게 된 이유 중에 그의 지분이 상당하다.
그는 196cm의 거구다. 그래서 2m가 넘는 에드 캠퍼 역에 캐스팅되기 딱 알맞은 신체조건이었을 것이다. 4~5cm정도 작긴 하지만 키높이 신발 정도로 보완하지 않았을까 싶다. 원시 안경을 쓴 탓에 눈이 엄청 크게 보여서 언뜻 보기에 연쇄살인범 치고는 귀여운 인상이지만 전반적으로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살인마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비음이 상당히 많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독특한 발음이다. 그가 대사를 웅얼거리고 있으면 – 발음이 부정확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웅얼웅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 톤이 상당히 독특해서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는 워낙 거구인데다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서 나이가 엄청 들어 보인다. 처음 그에 대해 검색을 해 보고 1986년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좀 놀랐다.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PC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는 넷플릭스 작품답게 출연 배우의 인종과 성적 취향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백인 남녀 3명이 이끌어가던 FBI 행동과학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새로운 팀원을 선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행동과학부에서는 지원자 중 가장 적합한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흑인 요원을 선발하려고 하지만 대부분이 백인인 연쇄살인자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 특수한 사정상 결국 백인 요원을 뽑는다. 그 과정이 극의 흐름과 조금 동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팀에서 흑인 팀원을 추가하지 못하는 이유를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70년대 FBI에서 여성이 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PC적으로 선방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일단 중심인물인 닥터 카 박사가 레즈비언이고, 인터뷰 대상인 범죄자 중에도 게이거나 게이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으며, 시즌 2에서 가장 중심 사건의 용의자는 흑인이면서 남자아이에게 성적 충동을 갖는 것으로 추측되는 게이다.
크리스토퍼 리빙스턴(Christopher Livingston, 1990년생) – 시즌 2 살인 용의자 역
이 배우는 아주 살짝 드러나는 동성애자 특유의 억양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극 중에서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장면이 있지만 게이다(Gaydar)를 조금만 가지고 있다면 말투만으로도 그가 게이임을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다.
여담으로, 시즌 2-6화에서도 연쇄살인으로 복역중인 게이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다. 인터뷰 중에 그는 “난 보통은 끼순이들 싫어요.”라는 대사를 말한다. ‘끼순이’로 번역된 원어는 swishy라는 단어로, 연약하고 사내답지 못한 호모라는 속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좀 놀랐다. ‘끼순이’라는 단어는 한국 게이 커뮤니티에서 쓰는 속어인데 번역자는 이 단어를 어떻게 알고 사용했을까. 번역자가 동성애자일 수도 있겠지만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한국에서 동성애자들이 쓰는 용어가 그만큼 널리 퍼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 내심 반갑기도 하다.
[ 음악 ]
<마인트헌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음악이다. 1970년대 후반이 배경이므로 그 시대의 음악이 나온다. 아무래도 연쇄살인을 다루는 드라마라 그런지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의 음악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독특하게 각 화의 엔딩크레딧 장면마다 다른 곡이 흘러나오는데 음악이 워낙 좋아서 다음 화가 궁금한데도 저절로 크레딧 영상보기 버튼을 누르고 계속 음악을 듣게 된다. 음악을 더욱 잘 느끼고 싶다면 음질이 좋은 헤드폰을 쓰고 시청하면 좋을 듯하다.
삽입곡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을 소개한다. 시즌 1-9화의 엔딩곡이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 - I Wouldn't Want To Be Like You, 1977
이 곡은 처음 듣자마자 확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귀에 익은 느낌이었지만 분명 내가 아는 곡은 아니었다. 검색해보니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곡이었다. 1977년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36위까지 오른 것으로 보아 크게 히트한 노래는 아니다.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의 다른 엔딩곡에 비해 빠르고 경쾌하다. 저음이 잘 들리는 헤드폰으로 들으면 베이스 기타 소리가 아주 근사하게 들린다. 프로그레시브 팝 장르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펑크나 디스코 같은 느낌도 있다. 앞으로도 자주 듣게 될 것 같은 멋진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