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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영화] 렛힘고(Let Him Go) –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가 충격적인 장르 혼합 영화

by 나무전차 2020. 11. 11.

 

영문과 한글 포스터 비교 – ‘렛힘고’를 한글로 쓴 로고는 예쁘다. 그런데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라는 카피는 좀 오글거린다.

 

<렛힘고(Let Him Go)>는 올해 극장에서 본 두 번째 영화다. 첫 번째 영화는 블록버스터 화제작 <테넷(Tenet)>이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꽤 번거롭다. 입장 전에 작성해야 하는 QR 코드 출입명부는 극장 말고도 여러 곳에서 해본 터라 익숙해지긴 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건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넷플릭스의 쨍한 화질에 적응한 눈으로 극장 스크린에 비친 화면을 보면 조금 뿌옇게 보이는 느낌이 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놓친 장면이나 다시 확인해보고 싶은 장면을 돌려보기 할 수 없다는 점도 약간 답답하다.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전에는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일들을 점점 다르게 인식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스포일러] 다음 내용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다. 1960년대 미국 북서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서늘한 기온이 느껴지는 황량한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요즘 같은 늦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인 듯하다.

 

영화 <맨 오브 스틸(Man of Steel), 2013>에 이어 다시 시골에 사는 부부 역할을 맡아 출연한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와 다이안 레인(Diane Lane)의 케미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부부를 보고 있자니 나도 저런 인생의 반려자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은 노부부라기보다 아직은 중년 부부의 느낌이 더 강하다.

 

하지만 그저 아름답게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긴장감이 감돈다. 초반에는 평화롭고 잔잔한 가족 드라마였다가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면서 스릴러 장르로 옮겨가는 듯하더니 막판에는 거의 호러물이다.

 

영화 중후반에는 아예 잠이 확 깨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다. 전날 잠을 충분히 못 자서 피곤하기도 했던 데다가 황사용 마스크를 쓴 탓에 산소가 부족했던지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음이 밀려오는 상황이었다. 마치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중을 !’ 소리로 깨우는 순간 같았다. 그렇게 잠이 확 깬 이후부터는 또랑또랑한 정신으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렛힘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장면 이후부터 분위기가 확 바뀐다. 전형적인 할리웃 영화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따르지 않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역시나 오리지널 각본이 아닌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작가 래리 왓슨(Larry Watson, 1947년생)이 쓴 <렛힘고(Let Him Go), 2013년작>가 원작이다. 한국어판으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나이가 꽤 많은 작가인데 젊었을 때보다 최근 들어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는 듯하다.

 

<렛힘고(Let Him Go)>는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와 분위기가 여러모로 유사하다.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것도 그렇고 비슷한 시기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점, 하드보일드(hard-boild)풍 스타일로 전개되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렛힘고>에서도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 못지않은 악인이 있다. <렛힘고>는 좀 더 서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력구제]

 

시대적인 상황도 있고 경찰력이 구석구석 미치기 어려운 드넓은 땅이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력구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 관대한 편인 듯하다. 법치주의와 질서가 확립된 문명국가에서는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마땅하지만 영화 <렛힘고>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자력구제의 방법 말고는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치안 유지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현대 한국의 모습은 이런 영화의 상황과 비교하면 매우 양호한 편이지만 마냥 안심하고 살 수만은 없다. 나에게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알 수 없으니까. 영문도 모른 채 폭행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빈번하다.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이 매우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탓에 쌍방폭행이 되지 않기 위해 맞고도 참아야 하고 정당방위의 요건이 무척 까다로운 한국의 법체계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도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출연배우]

 

다이안 레인(Diane Lane, 1965년생) – 마가렛 블랙릿지(Margaret Blackledge) 역

 

마가렛 블랙릿지(Margaret Blackledge)는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캐릭터다. 입체적인 성격이라고 해야 할까. 다정다감하고 현명한 듯하지만 꽤나 독선적이기도 하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자기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혹독한 평가를 내려보자면 그녀의 평소 행동이나 선택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인간은 없다. 사람은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고, 잘못된 일은 바로잡기도 하는 게 아닐까. <렛힘고>에서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걸 마가렛의 행보를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섹시한 청춘스타였던 다이안 레인은 멋있게 늙어가는 배우다. 55세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염색을 하지 않아서 희끗희끗한 머릿결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노부부 역할을 맡기에는 아직 젊긴 하다. 현대물에 출연하면 다시 확 젊어진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 1955년생) – 조지 블랙릿지(George Blackledge) 역

 

조지 블랙릿지(George Blackledge)는 은퇴한 보안관이다. 무뚝뚝하고 과묵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상남자 스타일이다. 사랑하는 아내 마가렛(Margaret)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런데 인생 막판이 좀 꼬인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며느리는 재혼하여 한창 귀여운 나이의 손자를 데리고 떠난다. 떠나버린 손자는 잊고 아내와 함께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는 건 조지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결국 아내와 같이 손자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케빈 코스트너는 출연한 작품마다 늘 비슷한 과묵한 상남자 캐릭터를 맡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역할이 그에게 매우 잘 어울린다. 케빈 코스트너가 수다스럽고 코믹한 연기를 하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렛힘고>에서도 역시나 마찬가지 캐릭터다. 하지만 이제 많이 늙었다.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 1992년>에서처럼 상대방을 가뿐하게 제압하는 쌩쌩한 캐릭터는 아니다. <렛힘고>에서는 그 점이 가장 아쉽다.

 

 

 

 

 

레슬리 맨빌(Lesley Manville, 1956년생) - 블랑쉬 위보이(Blanche Weboy) 역

 

블랑쉬는 마가렛의 며느리였던 로나(Lorna)의 새로운 시어머니이자 위보이 가문의 큰 어른이다. 거친 남자들만 있는 집안이지만 다들 블랑쉬에게 복종하고 순종한다. 가족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하지만 따뜻한 어머니의 역할이 아니라 마치 범죄집단의 두목 같은 느낌이다. 가족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휘어잡고 있는 듯하다. 위보이 가문을 다들 경계하는 눈치다.

외딴 시골에 살면서도 마가렛과는 다르게 희끗희끗함이라고는 전혀 없이 완벽하게 탈색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블랑쉬라는 거친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매우 불편해진다. 대책 없이 이유 없이 무작정 악에 찌들어있는 듯하다. 자신의 가족 외에는 모두 무찔러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블랑쉬에게는 타협이나 양보는 없다. 타인은 자신이 지키고 누려야 할 행복을 앗아가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불한당일 뿐이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큰일이다. 특히 적으로 만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