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 엑스파일(The X-Files) 시즌 9-13화 시작 부분을 보면 도겟(John Doggett) 요원과 레이어스 요원(Monica Reyes)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레이어스]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떨까?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오래 산다는데.”
[도겟] “난 전에 고양이를 길러볼까 했었어.”
[레이어스] “(의아한 듯)음…사람엔 고양이형 인간(cat people)과 개형(dog people)인간이 있어. 그런데 당신은 전형적인 개형 인간(dog person)이야.”
[도겟] “왜 그렇게 느꼈지?”
[레이어스] “당신은 신의가 두텁고(faithful), 믿음직하고(dependable), 교활하지도 않지. 그리고 같이 있으면 늘 편안하거든.”
[도겟] “…….”
[레이어스] “왜 고양이를 키우려고 했는데?”
[도겟] “깔끔하잖아. 그리고 주인에게 바라는 게 별로 없으니까 실망하게 할 일도 없을 테고.”
[레이어스] “난 당신이 누굴 실망하게 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가.”
나는 애완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만일 개와 고양이 중 하나를 선택해서 키워야 한다면 도겟처럼 고양이를 택할 것 같다. 사람에게 애정을 달라고 안달복달하는 개에 비해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세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물론 고양이는 개만큼 감정의 교류가 깊지 않을 것 같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그런데 나는 고양이형 인간일까? 개형 인간일까?
얼핏 생각하면 나는 고양이형 인간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을 깊게 열지도 않으며 타인이 내게 보이는 관심에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복수를 좋아한다. (후후훗) 고양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수를 꼭 갚는 동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만일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전생에 남에게 저지른 악행이 업이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거라면, 전생에 대한 아무 기억도 없이 당하는 나는 그저 억울할 마음만 들 것이다. 괜히 구질구질하게 다음 생애로까지 그 업을 끌고 나가기보다는 차라리 지금 세상에서 다 해결하는 편이 좋을 듯싶다. 확실하게 용서하든지, 확실하게 복수하든지.
반면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은혜를 꼭 갚는 선한 동물의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주인 한 명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은 든든해 보인다. 주인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먹이를 주고 보살펴주는 주인을 옆에서 따른다. 내가 어떤 짓을 저질러도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는 충직한 존재가 옆에 있다는 건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자기의 개를 나쁜 일에 써먹는 못된 주인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건 정말 쓰라린 경험이다. 특히 나 같은 고양이형 인간은 더욱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기대를 하지도 않는 고양이형 인간이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다. 누구에게 기대하지 않고 믿지 않고 혼자서 고고하게 인생을 자존심 있게 살아보려는 고양이형 인간들은 마음이 여릴 수밖에 없다.
배신당할까 봐, 상처 입을까 두려워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여린 고양이형 인간들 – 그들의 신의를 배신하지 말지어다. 잔혹한 복수가 뒤따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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